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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과, 수박, 참외, 귤…가장 오래 된 '토종' 과일은?
작성자 참외향기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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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0-12-05 15: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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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상에는 여러 가지 음식이 올라간다. 제사상 음식이야말로 보수적이기 짝이 없어서 전통 명문 종가라면 지금도 수백 년 전통을 지키고자 애쓴다.

상차림이 그대로인 것은 둘째 치고 조리 방식도 요즘 식이 아닌 예전 그대로를 고집하며, 상 위에 올라가는 음식 재료에도 신경을 써서 가급적이면 수입품이 아닌 우리 재료를 쓰려고 한다. 그렇기에 제사상의 음식은 요즘 음식과 많이 다르다. 포나 적도 요즘과는 다른 방식이라 신세대들에게는 제사 때만 볼 수 있는 신기한 음식이 많다.

하지만 제사상에 오르는 과일도 그럴까? 보통은 탐스럽고 먹음직한 사과나 배가 제사상을 떡 하니 차지하는데, 격식을 많이 따지지 않는 집이라면 오렌지나 바나나 같은 수입 과일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5대조까지 제사를 올리는 집이라면 5대조 조상님께서는 살아생전 요즘의 후지 사과나 신고 배를 맛보셨을까? 5대조면 대개 150년 전의 분이니 혹시 사과나 배는 맛보셨더라도 요즈음 과일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과나 배는 아니었을 것 같다.

세계를 한 바퀴 돌아 우리에게 온 사과

사과, 배, 포도, 귤, 참외, 수박, 감, 살구, 복숭아, 자두 등 많은 과일이 있지만 어떤 것은 너무 흔하기에 오래된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흔하지만 외래종일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과는 오래되었다고 느낀다. 어린 시절부터 대표적인 과일이기도 했고, 조금은 다르지만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능금 같은 야생종도 볼 수 있었다. 홍옥과 국광 같은 사과는 지금은 찾기 어렵지만 그래도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든다.

사과의 원산지는 서아시아지만 사과가 본격적으로 과일이 된 곳은 유럽이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이탈리아와 프랑스 일대에 퍼진 사과는 성서에서 선악과를 대표하는 것으로 흔히 알려졌는데, 아마 가장 맛있게 생긴 과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사과가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종류들은 시고 떫은 맛 때문에 과일주의 원료밖에 되지 못했다. 이 사과가 다시 한 번 변신하게 된 것은 미국으로 건너가서였다. 18세기에 미국의 존 채프먼이라는 사람은 포대자루 같은 누더기를 입고 걸식을 해가면서 미국의 중서부 전역을 돌아다니며 사과나무를 심었다. 채프먼 덕분에 이 사과나무들이 서로 교배와 번식을 통해 새로운 사과로 거듭났다.

우리나라에 사과를 들여온 사람은 19세기 말의 선교사들이었다. 기독교와 함께 사과가 들어온 것이다. 이 사과가 퍼져나가 황해도의 황주와 대구가 이름난 사과 산지가 되었다. 그 이전에 있던 능금은 중국을 통해 고려로 전해졌는데, 서울의 자하문 밖, 지금의 세검정 일대와 황해도가 능금으로 이름난 곳이었다.

지금은 흔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껍질이 푸르고 향기가 독특하며 맛이 단, '인도 사과'로 불리던 품종도 있었다. 이는 종자를 가져온 선교사의 고향인 미국 '인디애나 주'가 잘못 번역되어 '인도 사과'가 된 것이다. 여하튼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과수원은 거의 일본 사람들의 차지가 되었고, 이 사과나무의 육종도 거의 다 일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후지나 홍로 같은 품종도 일본에서 들여왔다.

오래전부터 친숙했던 감과 참외

감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친근한 과일이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와 같이 시가에 등장할 만큼 친숙했다. 감을 말린 곶감은 설화에도 등장하는 단골 주전부리이기도 했다.

감과 인척 관계인 나무로는 고욤나무가 있다. 대개는 감보다는 고욤이 튼튼하고 잘 자라기 때문에 고욤나무에 감나무 가지를 접붙여 길렀다. 감물을 들인다 하여 감으로 염색을 하기도 하는데 염색에는 먹는 감보다는 이 고욤을 주로 썼다.

감이 흔한 과일이었다는 사실은 대추나 밤과 같이 떡의 보조 재료로도 널리 쓰인 데에서 엿볼 수 있다. 순창의 명물인 감떡은 이 지방의 특산물로, 떠서 먹는 떡인데 모양부터가 고추장과 비슷하다. 아마도 고추장의 제조법이 감떡으로 옮겨온 듯하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전래된 참외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과일이다(참외의 서양 판본인 멜론은 아프리카가 원산지다). 참외가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재배한 과일이고 예전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옛 그림의 참외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제로 능금이나 돌배가 그다지 먹음직스럽지 않았던 시대에 이 참외의 값어치가 얼마나 대단했을지는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다.

노랗고 줄이 있는 것은 은천참외고, 줄이 없이 매끄러운 것이 황진주단참외다. 충청도 성환에서 나는 것을 성환참외라 하는데 이는 녹색에 얼룩이 있어 개구리참외라고도 한다. 참외는 날로 먹기도 했지만 박속처럼 된장 단지에 박아 넣어 장아찌로 먹기도 했다.

참외의 '외'자가 들어간 채소인 오이는 참외와 같이 인도가 원산지이지만 참외보다는 늦은 시기에 들어온 것 같다. 잎사귀나 줄기 모양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해 '외'라는 이름을 공유해야 했지만, 이전부터 있었던 '외'는 진짜라는 이름을 덧붙여 '참외'기 되었고 늦게 들어온 오이가 그 이름을 이어받아 '오이'가 되었다. 사실 오이는 대개 채 여물기 전에 먹으니, 호박의 예로 본다면 '애오이'로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늙은 오이가 맛이 쓰기에 차츰 어린 것만 먹게 되어 '외'라는 이름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귤과 배는 제대로 우리 과일이다

귤은 흔히 외국 과일로 생각한다. 예전에는 귤이 흔하지 않았거니와 대중화된 것도 오래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귤은 원래부터 제주도에 있던 과일이다. 지금도 제주도의 제주시와 광령리에는 토종 귤나무가 살아 있다.

물론 지금의 귤나무는 뒤에 들어온 온주밀감 계열로, 재래 귤과는 조금 다르다. 재래종 귤나무는 그보다 조금 작기는 했지만 귤이 열렸다. 예전에 조정에서는 제주도 귤이 진상품으로 오면 특별히 과거 시험을 치르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희귀품이었지만 먹을 수는 있었던 것이다. 모양이 귤과 닮기는 했지만 맛은 진저리가 날 만큼 신 유자는 비교적 흔한 과일이었다. 향기가 좋기는 하지만 너무 신 맛 때문에 꿀에 재워 유자청을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배도 능금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자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삼국시대의 기록에도 배가 나오며 봄꽃의 전령으로 배꽃을 읊은 시도 많으니 말이다. 달밤에 선연히 핀 흰 배꽃을 보는 것은 또 다른 놀라움이다. 하지만 이때의 배는 지금처럼 크고 먹기 좋은 배가 아닌 돌배였다. 지금도 야생하는 배나무에서는 돌배를 구경할 수 있다.

이 돌배가 일본에 건너갔다가 선진 육종기술로 다시 돌아온 것이 지금의 배다. '신고'나 '이십세기'와 같은 배의 품종은 모두 일본에서 개발되었다. 배는 우리의 기후와 토양에 잘 맞아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과일 상품이다.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도 우리나라에서 기르면 더욱 수분이 풍부하고 맛 좋은 배로 거듭난다. 이 때문에 우리도 뒤늦게나마 나주에 배 연구소를 세워 새로운 품종의 배를 개발하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그림에도 등장하는 복숭아와 포도

복숭아와 자두, 살구와 매실은 나무와 꽃의 모양새가 서로 비슷하다. 중국과 동북아시아가 원산지라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자생하고 있었을 것이고 열매를 먹기도 했을 것이다. 민화에는 크고 탐스러운 복숭아 그림이 나오는데 이는 서왕모가 기르는 천도복숭아를 그린 것이다. 이 복숭아를 먹으면 죽지 않고 오래 산다는 뜻이니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옛날에도 복숭아와 자두, 살구가 있기는 했지만 탐스럽고 맛있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기록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크기가 요즘 것과 달리 작고 맛도 형편없고 시었으리라고 짐작하는 게 옳다.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자두가 볼품없다는 기록이 나온다. 요즘의 복숭아, 살구, 자두는 거의 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육종한 종을 들여온 것이다.

포도는 고려 시대의 도자기에도 무늬로 들어가 있으며 조선 시대의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한 송이에 알맹이가 많기에 다산을 의미하는 뜻에서 그려 넣었다. 포도의 원산지는 서아시아의 흑해 연안 지방이라고 하는데, 이 포도가 유럽에 전해져 지중해 유역의 대표적인 과일이 되고 과일주의 대명사인 포도주를 만들어냈다. 포도가 중국에 들어온 것은 장건의 서역 원정 이후라고 하니, 우리나라도 포도를 재배한 역사는 오래된 것 같고 산에서 자생하는 산포도인 머루도 있었다.

그런데 그림에 등장한다고 해서 다 있는 것은 아니다. 고려청자에 보면 여지(荔枝)라는 과일이 자주 등장한다. 양귀비가 이 과일을 특히 좋아해, 장안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이 과일을 날마다 파발마를 동원해 날랐다고 한다. 그런데 여지는 날이 더운 곳에서만 자라는 열대 과일이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자랄 수 없다. 아마도 무역이 활발한 고려에서는 귀족들이 중국 남부에서 이를 수입해다 먹었던 것 같고, 그런 고급 과일의 이미지가 고려청자에 표현된 게 아닌가 하고 짐작한다.

조상님 전에 올린 과일

대표적인 여름 과일인 수박은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래도 고려 말부터는 자리를 잡았다. 아프리카가 원산지로 추정되는 수박은 몽골이라는 거대 제국의 길을 따라 중국을 거쳐 고려에 등장한다.

조선의 풍운아였던 허균이 쓴 맛 기행인 <도문대작(屠門大嚼)>을 보면, 고려를 배신하고 몽고귀화고려인을 괴롭힌 홍다구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개성에다 수박을 심었다고 한다. 모양이 박과 닮았고 그 안에 시원한 물이 가득 찼으니 수박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처음 심은 사람이 누구였든, 더운 여름에 찬 냇물에 식혀 먹는 수박의 맛은 일품이었으니 여름 과일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앵두, 오디, 산수유처럼 알맹이가 작은 과일은 오래전부터 자생하고 있었지만 과육이 적어 상품화되기에는 부족하다. 딸기도 산딸기 같은 야생종이 자라지만 이를 과일이라 부르기는 좀 머쓱해진다. 무화과는 이름이 한자여서 꽤 오래된 듯하지만 실제로는 20세기에 이르러 아라비아 남부에서 도입되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예전 과일들은 지금의 과일전에 있는 과일들에 비하면 정말 먹을 만한 것이 많지 않고 볼품없었음을 알 수 있다. 과일 구실을 제대로 한 것은 기껏해야 감과 참외 정도였고, 귤은 높은 사람들만 맛볼 수 있는 진귀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제사상이나 잔칫상에 올리는 과일 대부분은 우리가 지금은 과일이라 부르지도 않는 마른 과일인 건과였다. 밤과 잣, 대추가 대표적인데, 대개 옛 제사나 연회의 상차림에 과(果)로 표기된 과실의 자리는 이것들이 차지했다. 밤과 잣은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것으로, 예로부터 품종이 좋기로는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생산지였다.

대추도 가을에 수확하여 말린 것을 떡과 과자에 넣거나 상차림, 한약재로도 두루 썼다. 호두는 한나라 때 장건이 서역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고려 즈음에 들어온 것 같다. 고려 때 원나라에 사신을 갔던 천안 사람 유청신이 씨앗을 얻어 고향에 심었으니 천안이 호두 산지로 유명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천안의 호두는 1940년대에 일본인들이 호두 재배를 장려하면서 일본에서 가져다 심은 것이다.

혀끝에 느껴지는 육종학의 발달

요즘의 과일전을 둘러보면 정말 철 따라 많은 과일이 오른다. 늦은 봄에 먹던 양딸기는 한겨울에 나오고 정작 제철에 나오던 노지 딸기는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다. 여름철의 수박과 참외도 봄부터 시작해서 늦가을까지도 흔하고, 한겨울이라도 비싼 가격을 탓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키위, 바나나. 오렌지, 자몽 같은 외래 수입 과일도 흔하고, 칠레에서 들어온 탐스런 포도가 겨울철 과일전 좌판을 차지하는 것도 이제는 낯익은 풍경이다.

종류만 다양해진 게 아니라 맛도 아주 빼어나다. 예전에는 수박도 맛있는 것을 고르느라 먼저 삼각형으로 조금 잘라 맛을 보고 샀지만 이제는 웬만하면 맛없는 과일을 찾기 더 어렵다. 이만하면 조상님 제사상에 올리는 과일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비록 조상님 살아생전에 이렇게 맛있는 과일들은 없었겠지만 영혼이라도 요즘의 뛰어난 과일을 맛보는 것을 어찌 탓하랴. 조상님들께서도 요즘 과일에서 현대 육종학의 발달을 본다면 마냥 신기해 할 것만 같다.

/장인용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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